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문단 편집) == 명칭 == 그의 성 ''''모차르트(Mozart)''''는 모첸(motzen, 남부 [[독일]] [[방언]]: motschen)과 하르트(hart)의 합성어인 '모츠하르트(Motzhardt)'의 변형으로, 뜻은 '험담하는 사람' 혹은 '조잡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주장과, 중세 고지 [[독일어]]로 습지를 의미하는 모스(mos)와 하르트(hart)의 합성어라는 주장이 있다.[* 독일계 성은 보통 그들 조상의 직업을 따서 만든 것으로, 조상 대대로 직업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면 현재 직업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독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성 뮐러(Müller)는 풍차 돌리는 사람 내지 방앗간 주인 정도 되겠다.] 아쉬운 것은, Mozart(Mozahrt)가 기록에 최초로 등장하는 것이 14세기이므로 새로운 자료가 추가적으로 발견되지 않는 이상 더 자세한 추측은 어렵다는 점이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로 굳어졌지만, 생전에 그가 성인이 된 후 사용했던 이름은 '''볼프강 고틀리프 모차르트(Wolfgang Gottlieb Mozart)'''였다. 이름의 미들네임이 고틀리프에서 아마데우스로 바뀌게 된 것은 그의 사후 미망인인 콘스탄체 때문이었다. 그밖에 어렸을 때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연주여행을 했기 때문에 각국 언어 관습에 따른 다양한 버전으로 이름이 각색되기도 했으며, 모차르트 본인이 성년이 되면서 본인의 취향이 반영되기도 했기 때문에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세례명]]은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구스 테오필루스 모차르트(Johannes Chrysostomus Wolfgangus Theophilus Mozart)''''이다. 세례명의 '볼프강구스 테오필루스(Wolfgangus Theophilus)' 부분을 독일식인 '볼프강 고틀리프(Wolfgang Gottlieb)'로 고친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 고틀리프 모차르트(Johannes Chrysostomus Wolfgang Gottlieb Mozart)''''를 일반적으로 모차르트의 풀네임으로 본다. 풀네임에서 첫 두 이름을 뺀 ''''볼프강 고틀리프 모차르트(Wolfgang Gottlieb Mozart)''''에서 독일식의 고틀리프(Gottlieb)를 라틴식으로 바꾼 아마데우스(Amadeus)를 채용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가 현재에 굳어졌다. 풀네임에서 생략된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Johannes Chrysostomus)''''는 '황금의 입'으로 알려진 교부(敎父)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라틴식으로는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이다. 언변이 뛰어나고 설교를 잘 하여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한국 가톨릭]]에서는 '요한 금구(金口)'라고도 부른다.]에게서 따왔다고 한다. ''''볼프강(Wolfgang)''''은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살던 고향의 호수 이름[* 호수 이름이면서 동시에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에서 따온 것이다. 지명이 아니더라도 볼프강은 [[독일어]]권에서 남자 이름으로 흔히 사용되는 이름 가운데 하나다. ''''테오필루스(Theophilus)''''는 [[대부]]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라틴화된 [[그리스어]]이다. 뜻은 '신의 사랑을 받은 자(Theo-Philus)'라는 의미이며 이를 독일식으로 쓰면 고틀리프(Gottlieb, Gott-Lieb), 이를 다시 라틴식으로 쓴 것이 아마데우스(Amadeus, Ama-Deus)였다. 모차르트가 성년이 된 후 그의 이름은 공식적으로 독일식인 ''''볼프강 고틀리프 모차르트(Wolfgang Gottlieb Mozart)''''라 표기되었다. 모차르트 생전에 열린 콘서트 포스터에는 거의 모두 '볼프강 고틀리프 모차르트(Wolfgang Gottlieb Mozart)'라고 표기되어 있다. 프라하 등에서 열린 콘서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장난기가 많았고 언어유희를 좋아했던 모차르트는 사적인 편지에서 ''''아마데(Amadé)''''라는 [[프랑스어]] 이름도 즐겨 썼다. 이러한 표현은 대부분 가족이나 지인과의 편지에서 사용되었고, 공식적으로 사용된 적은 사실상 없었다. 모차르트가 ''''아마데우스(Amadeus)''''라는 정식 라틴어 표기를 사용한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아마데우스를 쓴 경우에도 ''''우올프강구스 아마데우스 모차르투스(Wolfgangus Amadeus Mozartus)''''라는 식으로 이름 전체를 라틴어로 표기했는데, 이는 재미로 고대 로마식 이름을 흉내내서 써본 것이며, 결코 대외적으로 정식으로 사용한 이름은 아니었다. 현재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모차르트가 생전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라고 표기한 적은 1787년 5월 단 한번 있다고 한다. 이렇게 생전에 공식적으로 '볼프강 고틀리프 모차르트'였던 그의 이름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라고 바뀌게 된 것은 그의 사후, 그의 작품의 판권을 상속받아 소유하고 있던 미망인 콘스탄체의 개인적 의지 때문이었다. 미망인 콘스탄체는 모차르트 서거 직후부터 자신의 공식적인 서명으로 '콘스탄츠 모차르트(Konstanz Mozart),[* 콘스탄체는 서명에서는 항상 독일식인 '콘스탄츠(Konstanz)'라고 표기했다.] 결혼 전 베버(Weber), 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미망인'이라는 서명을 사용했다. 그러나 콘스탄체의 서명과는 관계없이 모차르트 추모 콘서트를 포함해서 대외적으로는 여전히 '볼프강 고틀리프 모차르트(Wolfgang Gottlieb Mozart)'라는 표기가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모차르트 서거 후 1798년 그 유명한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출판사에서 모차르트 미망인 콘스탄체의 허가를 받아 모차르트 전 작품을 악보로 출판했는데, 이 때 모든 작품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 서거 후 레퀴엠의 완성을 시작으로 적극적으로 모차르트의 작품을 정리, 출판했다. 이를 통해 콘스탄체와 자녀 등 모차르트의 유가족들은 경제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고, 또 모차르트의 악보, 편지를 비롯한 각종 자료가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아마데우스(Amadeus)라는 라틴식 미들네임이 사용된 것은 모차르트 전 작품의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미망인 콘스탄체의 의사가 반영되었다고 보여지고 있다. 악보계의 바이블과 같은 위치에 있었던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사에서 출판된 모차르트 악보가 유럽 각지에서 사용되면서 이 이름이 완전히 굳어지게 된 것이다. 되도록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모차르트'가 올바른 한글 표기이다.[* 실제 발음은 표준 독일어 기준으로 모차트에 가까우며, [[오스트로바이에른어]] 방언 발음으로는 모짜르트에 가깝다.] 하지만 '모'''짜'''르트'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외래어 표기법이 정착되기 전인 1980년대만 해도 이 명칭이 더 흔하게 쓰였다. 한국의 경우 [[http://news.imaeil.com/NewestAll/2015112601014325376|모제도(慕帝道)]]라는 [[음역(번역)|음역]]한 이름도 있었으며 해방 직후까지 이 음역한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